이번 13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스탈린의 선물(A Gift to Stalin)>이었다. 1949년 스탈린 철권통치 아래의 소련에서 우리 동포를 포함해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수많은 민족들의 슬픈 현실을 고발한 영화다. 국가사회주의의 악몽 스탈린 체제는 그의 70회 생일을 맞아 소련 도처에서 축제를 벌이며 그에게 보내는 선물행렬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그와 함께 마침내 최초의 핵실험으로 중앙아시아의 현실을 폐허화시킨다. 그건 실로, 선물이 아니라 잔혹한 악몽이었다.
당시 중앙아시아는 소련연방의 일부로 러시아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자치주가 아니라 식민지처럼 취급당했다. 경찰은 혼자 사는 여인을 함부로 겁탈했고, 이주민족들을 무력한 유랑자처럼 짓밟았다. 군은 물자를 노략질에 가까운 헐값으로 징발했고 무수한 아이들이 고아가 되어 떼 지어 다녔다. 절대 권력이 저지른 죄악이다. 이 카자흐스탄에 어찌하여 흘러들어오게 된 유태인 아이 사쉬카, 그리고 그를 돌보는 할아버지 카심은 이 영화에서 폭압적 현실에서 인간을 지켜내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불가리아 영화 <힌드미스>는 사회주의 불가리아가 멸망한 이후 싸구려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한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여기서 “힌드미스”는 광고를 통해 매일같이 불가리아 인들에게 사기를 권고하는 상품 브랜드의 상징이다. 구질구질한 아파트에서 벗어나 꿈처럼 그리던 단독 주택 드림 하우스로 옮기게 된 두 부부는 이웃해 살면서 히드미스 상품을 구매 경쟁하고 서로 시기한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개성을 바라지만, 이미 시장에서 대량으로 판매되는 물건들은 날이 갈수록 그들을 몰 개성화 시킨다.
상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남는 것은 소유의 욕망뿐이고, 그와 반대로 인간은 황폐해져간다. 결국 모든 것이 불타고 이쪽의 남편과 저쪽의 이내만 남게 된다.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떠나온,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공원으로 돌아간다. 국가 사회주의의 환멸에서 탈출한 불가리이가 들어선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의 길에 대한 비판이다. 자본주의라는 마을에서는 집을 짓고 다시 불태워 또 다시 짓는 기묘한 전통이 있다는 대사는 이 영화가 무엇을 안타까워하는지 말해준다.
권력도, 자본도 모두 인간을 지배하는 절대자가 되어간다면 인간은 사라지고 마을은 폐허가 되며 결국 남는 것은 쓸쓸한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운 두 영화는, 서로 대조적인 현실을 지목하고 있지만 동일한 주제로 오늘을 일깨운다. 이 교차로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곳으로 지금 가고 있을까?
퀴즈 두 개를 내보자. 첫째, 갈대아, 이집트, 아시리아, 메데, 바빌론,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그리스, 로마, 파르티아, 이 이름들은 모두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 답은, 지중해와 중근동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 제국들이라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역사에서 인류는 문명의 근원과 저수지를 목격하게 된다.
두 번째 퀴즈. 이 모든 제국의 통치를 경험하면서도 끝내 살아남은 약소민족은? 답은, 오늘날 우리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히브리 민족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히브리 민족의 고대사를 보면 고대 제국의 역사가 보인다.
기원후 37년에 유태인으로 태어나 로마와 싸우다가 결국 로마제국의 일원이 되기도 한 요세푸스는 <유대전쟁사>를 쓴 탁월한 역사가이다. 그의 <유대전쟁사>는 당대의 국제정치와 고대 문명사를 치밀하게 기록하고 정리해나간다. 히브리 역사만이 아니라 로마제국, 그리고 고대 문명사, 그리고 역사 속에 등장한 예수를 연구하는 데에도 필독서다.
그런 식으로 로마의 역사와 히브리 민족 그리고 고대 중동 제국의 역사를 함께 읽고 공부하면, 당대의 세계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곳은 이미 그때 당시의 세계가 하나로 엮여진 “고대(古代) 세계화”의 구조를 구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대라고 부르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 최고의 현대적 현실을 경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기원후 1세기에 이르면, 이 지중해-중근동 지역과 아시아는 인도와 근방 중앙아시아를 매개로 해서 “실크 로드”로 이어진다. 알렉산더가 기원전 4세기에 원정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당대의 박트리아는 그리스 제국의 최 동방 전선이기도 하고 이후 중국이 서방을 알게 되는 길목이기도 하다. 박트리아는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동과 서는 이미 이렇게 오랜 옛날, 하나의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보자면 히브리의 역사, 중동의 역사를 아는 일은 인류 문명 전체 역사를 아는 일과 직결된다. 물론 오늘날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우리의 외교역량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일도 이와 관련되어 있지만 이 지역의 역사와 현실을 아는 것은 그런 정도의 수준을 넘는 인문학적 기본이다.
그런데 아시아 유일의 히브리 중동학과를, 건국대학이 대학 경쟁력을 내세워 폐과하기로 했단다. 스스로의 소중한 자산을 훼손시키는 교육적, 문화적 폭력은 아닐까? 이 대목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세력 탈레반이 세계적인 불교 유적지를 포탄으로 파괴해버린 야만의 현장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2008년 9월 28일 [메트로 서울]
지리산 밑에 숨겨진 물감 통
2008년 5월 18일 [메트로 서울]
지리산 자락을 감싸는 햇볕은 투명하고, 산을 감돌아 흐르는 섬진강은 은어처럼 빛났다. 높이는 장대했지만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진 능선은 편안한 느낌으로 한 눈에 담겨온다. 초대받아 간 곳은 낡고 오래된 민가이지만, 그 집이 들어선 자리는 그 어느 곳도 부럽지 않다. 서울을 떠나 그곳에 당도한 벗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들뜨기 시작했다.
미세한 바람의 떨림에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풍경소리 마음을 흔들고, 다정한 벗들과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기분 또한 유별나다. 세월이 넉넉하게 지나간 한지를 바른 벽은 거기에 대고 불현듯 일필휘지(一筆揮之) 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 그대로 병풍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제멋에 겨운 호기심이 발동한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가인 집 주인의 선기(仙氣) 가득한 묵필(墨筆)과 묵화(墨畵)는, 도시에서 찾아온 좌중을 한껏 찬탄하게 만들었다. 화개장터가 있는 속세가 한 걸음이지만, 어느새 출가(出家)의 세상에서 신선이 된 듯 한 유유자적(悠悠自適)에 소리 없이 빠져든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언뜻 고개를 들고 이어지는 산 저 너머 하늘을 본다. 지난 밤 머리 위로 쏟아진 별들이 박혀 있던 자리, 흔적 없어 아쉬운 한편 거침없이 푸르다.
아침 일찍 산책을 다녀온 벗이 가져온 앵두나무 가지에 달린 열매는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무얼 말하는지 담밖에 알아차리게 한다. 그런 붉은 빛은 난생 처음 보았다. 누군가 주저치 않고 말한다. “땅 속에 물감 통이 숨겨져 있어서 그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색을 만든 이의 사랑도 그리 붉게 타오를 것이다. 그가 다녀온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보성과 더불어 우리 차(茶)의 산지, 하동(河洞)의 연두 빛 차밭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물감 통이 있기는 있나보다. 곧 <하동 야생차 문화축제>가 열릴 참이다.
하동 차 박물관 주인은 2대 째 그곳을 지키고 있는 착한 눈빛의 사나이였다. 두툼한 손을 가진 그는, 새로운 차를 만들었다며 녹차에 박하를 섞은 차를 끓여 내놓았다. 그 맛은 지리산의 기운을 소박하면서도 신선하게 풍기고 있었다. 차를 마신 마음이 이내 다소곳해지고 말투조차 차분해진다. 커피가 우리의 영혼을 이국의 정취로 황홀하게 만든다면, 차는 깊이를 더한다. 얼마 전 옛길도 열렸다 하니, 지리산은 더더욱 그 야생의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몸에는 지리산 향기, 그득 풍긴다. 그 향기마다 색깔이 있다. 벗들과의 우정과 오랜 만의 산행, 그리고 섬진강의 반짝거리는 비늘과 하동의 차 한 잔이 꿈결처럼 가슴에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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